요즘 『프로이트의 감정수업』을 읽고 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중이라, 읽으면서 찾아보고 정리한 것들을 하나씩 나눠보려고 해요. 오늘은 '나르시시즘'입니다.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
※ 아래는 심리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에피소드입니다.
회의 중에 팀장이 말합니다.
"이렇게 바꾸는 게 더 좋지 않아?"
직원들은 이유를 들어 반대합니다. 지금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고요. 한참 실랑이가 이어지다 결국 직원이 말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수정할게요."
그런데 팀장이 대답합니다.
"아니, 내가 하라고 한 게 아니잖아."
"네...?"

"나는 그냥 제안한 거라고."
직원은 잠시 말을 멈췄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팀장이 다시 묻습니다.
"너희가 생각해도 이게 더 낫지 않아?"

회의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잠시 후 한 사람이 답합니다.
"....네.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제야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지. 내 말이 그거야."
회의가 끝났습니다.

원한 건 결정이 아니었다
팀장이 정말 원한 게 그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었다면, 직원이 수정하겠다고 말한 순간 대화는 끝났어야 합니다. 그런데 끝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하라고 한 게 아니잖아"라며 한 발 물러섭니다.
따라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겁니다. 필요한 건 "당신 말이 맞아요."라는 확인이었으니까요.
나르시시즘은 흔히 '자기를 너무 사랑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경우, 겉으로 드러나는 자신감과 달리 자기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인정에 크게 의존하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특징이 함께 나타나기도 해요.
- 자신을 실제보다 크게 보이려 함
- 그 이미지가 흔들리면 과도하게 반응함
- 비판이나 실페에 민감함
이런 관점에서 보면, 주변 사람은 함께 판단하는 동료가 아니라 내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회의실의 침묵이 유독 견디기 어려워지고, 누군가 답할 때까지 질문이 반복되는 이유예요.
자기 가치를 타인의 인정에 많이 의존할수록, 단순한 반대 의견조차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신호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업무상의 이견이 내 능력에 대한 부정으로 읽히는 거죠.
그럼 왜 그렇게 되는 걸까
책은 이 배경을 어린 시절의 경험과 연결합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성취를 통해서만 인정받은 경험이 '완벽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는 믿음을 만든다는 이야기예요.
실제로 비슷한 걸 다룬 연구가 있습니다. 성적이 좋을 때 부모가 애정과 관심을 더 주는 것을 '조건부 긍정적 인정'이라고 하는데요. 한 연구에서, 어머니가 이런 방식을 쓴다고 느낀 아이일수록 성공한 뒤에는 크게 부풀리고, 실패한 뒤에는 수치심과 자기 비하에 빠지는 모습이 뚜렷했습니다. 자존감이 가장 최근의 결과에 따라 크게 흔들리는 상태가 되는 거죠.
"1등 할 때만 안아줬다"는 고백이 왜 오래 남는지, 조금 설명이 됩니다.
다만 원인이 하나는 아니에요. 다른 가설을 검증한 연구도 있습니다. 2015년의 한 종단연구는 '부모의 과대평가'와 '부모의 애정 부족' 중 어느 쪽이 나르시시즘과 이어지는지를 비교했는데요. "너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특별하고 우월해"라는 식의 과대평가를 받은 아이일수록 이후 나르시시즘 수준이 높게 나타났고, 애정 부족 쪽에서는 그런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부모의 따뜻함을 받은 아이에게서 높게 나타난 건 건강한 자존감이었고요. 사랑을 많이 주는 것과 특별하다고 띄워주는 건 다른 메시지였던 겁니다.
결국 어느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가 지금까지의 답에 가까워요.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원인을 하나로 단정하는 순간 사람을 쉽게 판단하게 되거든요. "저 사람은 어릴 때 사랑을 못 받아서 그래"는 이해처럼 들리지만, 사실 또 다른 낙인입니다.
성향과 진단은 다릅니다
자기애적 특성은 진단과 별개로, 정도의 차이를 두고 폭넓게 나타납니다. 반면 자기애성 성격장애(NPD)는 전문가가 임상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고, 회의실 장면 하나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요즘 '나르시시스트'라는 말이 너무 쉽게 쓰입니다. 불편한 사람을 설명하는 편리한 라벨이 되어버렸어요. 하지만 개념을 배우는 목적은 남을 분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행동 뒤에서 무엇이 작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혹시 대화의 목적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서 '내가 맞다는 걸 인정받는 것'으로 바뀐 적은 없었나요?
저는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챕터가 오래 남았어요.
참고
강이안, 『프로이트의 감정수업』
Brummelman, E., et al. (2015). Origins of narcissism in children. PNAS, 112(12), 3659–3662.
Assor, A., & Tal, K. (2012). When parents' affection depends on child's achievement. Journal of Adolescence, 35(2), 249–260.